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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룸, 서대문

호국보훈의 달 기획 특집

6월, 서대문 호국의 길을 걷다

횃불이 타오르던 봉수대는 해돋이 명소로, 포성이 울리던 훈련장은 정겨운 시장으로 변모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쉼터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상징이 된 서대문 호국의 장소들을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통신시설에서 일출 명소로 안산 봉수대

6·25 전쟁 당시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무악산(안산)에 있는 봉수대터는 조선 시대 봉수 체제가 확립된 세종 24년(1438), 무악산 동·서에 만든 봉수대 가운데 동쪽 봉수대터입니다.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94년 복원되었으며, 지금은 서대문구를 대표하는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출처: 국가유산청

대포 터에서 전통시장으로 포방터시장

‘대포(砲)를 쏘는(放) 자리(터)’라는 이름의 포방터시장은 조선 시대 군사들의 사격 훈련장이자, 6·25 전쟁 당시 포를 설치해 서울을 방어하던 곳입니다. 1960년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대포 소리 대신 정겨운 사람 냄새 가득한 전통시장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서울 탈환의 첫 승전보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

6·25 전쟁 당시 서울의 서쪽 관문이었던 104고지에서는 1950년 9월 21일부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104고지 점령은 서울시민 구출의 선도를 여는 결정적인 계기였기에 우리 해병은 결사적인 반격을 가했고, 3주간의 혈전 끝에 고지를 탈환했습니다. 해병대 사령부는 작전 중 전사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1982년 이곳에 전적비를 세웠습니다. *출처: 국가보훈부

방어 요새에서 희망의 랜드마크로 유진상가

1970년 건립된 유진상가는 당대 최고급 주상복합 건물이자, 유사시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대전차 방어벽’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역사적 무게를 견뎌온 유진상가 일대는 49층 규모의 주상복합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입니다.

걷고, 기억하고, 사랑하라

햇살이 눈부신 일요일 오후 3시, 역사 도보 기행인 <기억의 공간, 서대문 독립공원>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독립문 앞에 섰습니다. 스탬프 투어북에 첫 도장을 찍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여정을 시작합니다.

서대문 독립공원 도보여행
  • 운영일시매주 (토), (일) 15:00
  • 문의문화체육과 ☎ 02-330-1649

사대의 흔적 위로 핀 자주독립의 꽃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은 이제 기둥을 받치던 돌덩이로만 남았습니다. 바로 뒤에는 올해 보수 공사를 마친 독립문이 서 있습니다. 흔히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떠올리지만, 청나라를 향한 사대(事大)의 굴레를 벗어던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날의 발자국, 그날의 목소리

3·1독립선언기념탑으로 향하는 길 양옆으로 독립지사 30인의 숭고한 삶이 ‘풋프린팅 동판’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고문 앞에서도 의연했던 이병희 지사의 작디작은 발, 누구나 독립운동가가 될 수 있다던 김우전 지사의 발자국을 가만가만 들여다봅니다.

이병희 지사의 풋프린팅 동판

평화로운 공원 속, 슬픈 판옵티콘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공원 너머로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담벼락이 보입니다. 3,000명 규모의 거대한 감옥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투사가 이곳을 거쳐 갔을까요. 중앙 감시탑에서 수용자들을 감시하던 판옵티콘 구조가 담장 밖에서도 선명합니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들의 원통함이 여전히 공기 중에 머무는 듯했습니다.

  • 판옵티콘: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감옥 구조. 중앙 감시탑에서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으나 수용자는 감시자를 볼 수 없도록 설계되어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함

우리 모두는 독립의 씨앗이었다

“특별한 사람만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에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의 씨앗을 품고 살았던 거죠.” 해설사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돕니다. 6월, 서대문 독립공원을 천천히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마주하며, 지금의 평화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내려다 본 독립공원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