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로 피서를 떠나는 것은 무더위로 지친 여름철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멀리 나가지 않아도 행복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서대문구 안에서 피서를 즐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안산자락길

서울 여름 나기

며칠 전 퇴근길에 리본 하나를 스칠 뻔했다. 능소화 덩굴에 매달려 있던 기다란 주홍색 리본.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서울둘레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분명 처음 들여다본 서울둘레길 안내 리본이었는데 이 계절 피어난 꽃의 색감과 닮아 있어 어딘가 정이 갔다.

늘 다니던 길에 리본 하나 걸려 있었을 뿐인데 답답한 서울이 달리 보였다. 그러고 보니 늘 바쁘게 돌아다니기만 했던 이 도심 한복판. 따뜻한 날도, 무더운 날도, 스산한 날도, 우중충한 날도, 으스스한 날도. 내내 잰걸음일 때가 많았다.

무더운 여름날 찬찬히 서울을 거닌다면 어떨까. 서울 둘레길, 한양도성길, 생태문화길, 홍제천길, 안산자락길. 서울에 이렇게 많은 길이 있었다니. 여러 길 가운데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황톳길을 걷는다. 푸른 녹음 아래 맨발 걷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수많은 고민의 가지들. 도심에 가로수를 놓듯 억지로 가지치기하기보다 그대로 둔다. 대신 찬찬히 걸으며 생각한다. 그러는 동안 마음의 바닥이 포슬포슬한 흙을 깐 듯이 차분해진다.

멀리 나가지 않고 서울에서도 충분히 울창해질 수 있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여름 과일이 들어간 음료 한 잔을 먹는 재미도 느낀다.

단순히 좋은 것을 바라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는 여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은 각박하다고만 생각했던 도심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둘 찾아 휴양을 즐기면 어떨까. 군데군데 사람들이 숨 쉬고 살기 위해서 조성한 마음의 숲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테니.

글_김민지 시인

시 「top note」 외 9편으로 제1회 <계간 파란> 신인상 수상
에세이 『마음 단어 수집』, 『시끄러운 건 인간들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