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런 예술 공간이 열리다
박서보재단은 매주 월요일 정오가 되면 홈페이지에서 투어 예약을 받습니다. 모집한 소수의 인원은 매주 수요일 2시, 박서보재단 건물로 초대됩니다. 주차장 옆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국 현대미술을 바꾼 박서보 화백의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문 너머에는 그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남긴 등신대의 조형물과 사진 그리고 그의 대표작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시대별로 나열된 묘법 연작 시리즈를 감상하고 있으면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예술에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병상에 누워 “구상 떠올랐다. 캔버스를 준비해달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별세하였다는 일화가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박서보재단 이유진 상임이사가 바라본 예술가 박서보는 꼭 구도자가 연상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창 때는 하루에 14시간씩 작업만 하셨을 정도로 대단한 열정을 가진 예술가셨어요. 한지에 먹인 풀이 다 마르기 전까지 작업하지 않으면 원하는 색깔과 형태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작업에 몰두하셨던 것 같아요.”
박서보재단은 현재 연희동 재단 건물 근처에 부지를 확보해 2025년 개관을 목표로 박서보미술관 건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대문의 새로운 문화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작품에 담은 유지를 지켜나가는 사람들
“비영리 재단은 상업적인 활동이나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의 예술 철학이 잘 지켜지도록 박서보의 유지를 따르는 데 그 역할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노년기의 박서보 화백은 세 가지 소원을 밝혔다고 합니다. 하나는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돈 걱정을 덜어주는 것, 또 하나는 청년 예술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술관을 만들어 신진 미술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뜻이 결실을 맺어 출범한 박서보장학재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4개 학과에서 각각 장학생을 선발해 1인당 500만 원씩 지원하고 있습니다. 청년 예술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박서보예술상도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대문과 함께 살아가다
“예술가로서의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인간 박서보는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어요. 서대문이 특별한 이유는 가족과 함께 둥지를 틀었고 동네를 돌아다닐 때마다 이웃들과 일상적으로 인사하던 인간적인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박서보재단에서 일하는 동안 이유진 상임이사는 박서보 화백의 추억이 남은 서대문에도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안산자락길을 종종 산책하곤 하는데 바람을 맞으면서 이웃들과 인사하고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게 너무 좋습니다. 제가 동물을 좋아하는데 서대문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주민들도 많아서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박서보재단과 함께 행복한 서대문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박서보재단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