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기운에 학생들의 분주함이 가득 느껴지는 이화여자대학교(이하 이대). 이대 맞은편 골목에 위치한 ‘빵 사이에 낀 과일’은 1997년부터 한자리를 지켜 온 터줏대감으로, 졸업생들은 추억을 품고 신입생들은 입소문을 타고 방문하는 곳입니다. 20년을 훌쩍 넘은 세월 동안 때로는 엄마처럼, 이모처럼 학생들의 빈속을 달래준 정다운 공간을 소개합니다.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메뉴

점심시간을 조금 넘은 시각이라 한산해진 ‘빵 사이에 낀 과일’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작은 테이블이 자리한 아담한 가게는 다양한 샌드위치와 떡볶이, 김치볶음밥을 주메뉴로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1997년 문을 연 당시만 해도 근처에 학생들이 먹을 만한 데가 많지 않았어요. 식당보다는 옷집이 많아서 쇼핑 명소로 유명했죠. 우리 딸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샌드위치 가게를 해보라고 추천했어요. 여학교 앞이니까 깨끗하고 조용하니 괜찮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는데,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네요.”
어느덧 손녀딸이 대학생이 될 만큼 오랜 세월이 지났다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사장님은 메뉴에 얽힌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로스쿨이 생기기 전에는 사시반이 따로 있었어요.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간 겨울날, 사시반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이렇게 추운 날에는 뜨끈한 걸 먹어야 하는데’ 라고 말하는 걸 들으니 안쓰러운 거예요. 얼마나 먹고 싶으면 저런 얘기를 할까 싶어서 그 학생들에게 ‘다음에 오면 떡볶이 한번 해줄게’라고 하고, 한두 번 하다보니 추가된 거예요.”
한창 집에서 밥 먹을 나이에 객지에 나와서 공부하느라 고생하니까 뭐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박춘희 사장님.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데 나라도 해줘야지 싶어서 만들어줬는데, 학생들이 맛있다며 계속 요청해서 결국 메뉴로 추가됐다고 합니다. 김치볶음밥 또한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밥을 먹고 싶다는 학생의 말에 처음에는 재료가 없어 거절했다가 마음에 걸려 고민한 끝에 탄생한 메뉴라고 하니, 학생들을 생각하는 사장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공간

그동안 이대 상권은 변화가 많았습니다. 옷 가게가 즐비해 찾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는 여러 어려움과 코로나19를 거치며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박춘희사장님은 “학교 앞이다 보니 수익을 앞세우기보다는 그저 다 자식같이 생각하고 묵묵히 지내온 것”이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만 문을 닫을까 고민하다가도 졸업생들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찾아올 때면, 다시 망설여지곤 했다고 말입니다.
“멀리 부산에서 남편이랑 찾아온 적도 있고, 결혼해서 아이랑 함께 오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아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는 저기에서부터 펄쩍펄쩍 뛰어오면서 소식을 전한 학생도 기억나고, 새해 첫날, 취업했다면서 모녀가 함께 방문하기도 했어요. 좋은 소식 가지고 오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보면 저도 참 기쁘고 좋죠. 여기 오면서 손 편지를 많이 써 와서 집에 한가득 있거든요. 부모님이나 친구한테는 말 못하는 고민을 들어주며 내 나름대로 위로해줬던 게 그냥 좋았나 봐요. 계속 이 자리에 있어 달라는 말들을 많이 하죠.”
음식 하나하나 내 자식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사장님은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얼마든지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덧붙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가게를 이어가고 싶은 청년이 있다면, 레시피든 뭐든 다 도와주고 싶어요. 창업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이윤 창출도 물론 해야겠지만, 온 마음을 담으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말로는 쉬운데, 진짜 가슴에서 오는 진심을 담아 행동하기는 어렵거든요.”
솔직하고 담백한 답변을 들으며 ‘빵 사이에 낀 과일’이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이 자리에 있어주기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계속 남아주기를 바라는 모두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