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영혼의 서랍을 건너가는 사람
계절을 탕진한 나의 오늘은 무죄입니다
어린 새벽 뜰에 기대어 혓바늘 돋은 손짓으로
나를 토닥이는
당신은 느티나무입니다
빛보다 먼저 빛이 되고
비보다 먼저 비가 되는 단 한 사람
왜 나였냐는 질문에 늘 그냥이라던
당신을 나는
기다립니다
제 살 깎여 이름 하나 건진 석등으로 오는 사람
베개 속에 건들장마를 키우시던 옛 어머니처럼
눈물에 부르튼 소맷자락 행주 아래로 감추며
가지 뻗을 시간도 없어 한줄기 기분으로 저무는 어스름
일부러 먼 길 돌아오는 당신은
거짓말입니다
나는 그림자 되어 따라 돌며 당신의 가녘에 물을 줍니다
강물에 등목하는 모래처럼
덜 아문 잠결 사이로 녹슨 풀이 몽유꽃을 피웁니다
하루가 멀다고 희끗희끗 아름다워지는 당신
스무 살 내 마음을 일부러 사로잡았던
그때의 당신보다
나는 지금,
당신이 더 그립습니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꽤 오래된
흐릿흐릿한 거울들이
두런두런 거리고 있다
그 거울 속에
슬픈 초상하나
내가 아닌 내가
슬픈만큼 웃고 있다
거울 속을 보고 또 보다가
“어, 넌 누구지”
등에 진
오후 3시 햇살이 무겁다
집에 와 거울을 닦고
또 닦고
슬며시 거울 속을 본다
웃는 것도 아닌
화난 것도 아닌
그 어설픈 초상하나
그는
“슬프다” 말 하려다
“넌
정말 누구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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