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운을 입은 푸른 눈의 의사 인요한 교수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천상 한국인입니다. 남다른 고향 사랑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역사와 사건들을 줄줄이 꿰뚫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모습에서 한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립유공자 윌리엄 린튼 선생의 후손이자 특별귀화 1호 대한민국 국민인 인요한 교수를 만나 ‘나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Q

2012년 특별 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난 뒤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이전까지는 왠지 모르게 부족하다고 느껴졌던 2%가 온전하게 채워진 느낌이었지요. 1979년 한국으로 귀화한 첫 번째 미국인이자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하신 민병갈(칼 패리스 밀러) 원장님이 어느 날 제게 “한국에서 계속 살 거면서 왜 대한민국 국적을 갖지 않느냐”고 말씀해 주신 것이 계기가 됐죠.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이제 와서 미국으로 돌아갈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대한민국 국적을 가져야겠다고 느꼈어요.


Q

온돌, 고향, 한국인들의 ‘정’이 특히 좋다고 꼽아주셨는데, 어떤 점들이 와닿으셨나요?

A

온돌방 아랫목에서 컸는데, 여기에서 지식과 지혜를 배울 수 있었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우치고 자랐죠. 정도 정이지만, 그때 제일 많이 배운 게 도덕이에요. ‘남들이 다 벗어난다고 해서 자기 궤도를 벗어나 룰을 안 지켜도 되는 법은 없다, 그렇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요. 스스로를 지키고 인간 됨됨이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죠.


Q

우리나라의 교육, 복지 등 사회발전에 공헌한 린튼가문의 대를 이어 교수님께서도 한국형 구급차 개발, 대북의료 지원 등 많은 활동을 이어오셨습니다. 교수님께 ‘나라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일제강점기로부터 나라를 지켰고, 전쟁을 겪으며 민주주의 발전도 함께 이뤘다는 자부심이 있죠. 저희 할아버지(윌리엄 린튼)께서 1912년에 남장로교 선교사로 조선에 오셔서 일제강점기와 3·1 운동의 실상을 보고 1919년, 미국신문에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글을 실으셨죠. 내용을 보면 간디보다 먼저 비폭력 저항운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후 저희 아버지(휴 린튼)는 군산 태생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셨고요. 저는 5·18 민주화운동 때 광주에서 영어 통역을 했죠. 이제 은퇴 2년을 앞두고 있는데, 무엇보다 해외 환자들이 한국에서 많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집중하고 있습니다. 환자 유치 1년에 매출이 500억 원대니까 어마어마하죠. 겉모습이 외국인인 제가 해외 환자들에게 한국의 의료를 홍보하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잖아요.

Q

‘나라 사랑’이나 ‘애국심’을 거창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요즘 시대에 나라 사랑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언젠가 서울역 앞에서 어떤 사람이 쓰러지자 여자 세 명이 와서 한 사람은 일으켜 세우고, 한 사람은 연고를 발라주고 나머지 한 사람이 식혜를 먹이는 모습을 봤거든요. 천국의 한 장면이었어요. 말로만 할 게 아니라 행동을 해야죠. 정의롭지 못한 일을 누가 당하고 있을 때 좀 끼어들어서 말리는 사람도 있어야겠죠. 가끔 여기에서 환자들이 싸울 때가 있는데, 그럼 제가 가서 그냥 손을 잡아버려요. 손을 잡고 부드럽게 물어보면 화를 가라앉히더라고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다 ‘나라 사랑’에 포함되죠.


Q

서대문구에서 교수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지,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A

답답할 때 안산에 올라가면 가슴도 탁 트이고 좋아요. 역사가 깊은 서대문에서 제일 귀한 곳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흩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곳이니까요. 그런 유적지에 가서 우리 역사가 어떻게 이어져 온 것인지 배우면서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나라를 지키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면서 자연스럽게 도덕 강의가 되는 것이죠.


Q

3·1절을 맞아 호국보훈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3·1 운동은 인류 역사상 무폭력 저항을 한 첫 사례예요. 간디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할아버지가 신문에 낸 글을 보고 알았어요. 무폭력 저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해요. 일본이 아무리 성을 가로채고, 일본 말을 가르쳐도 정신은 어떻게 하지 못했죠. 한국은 침략의 역사가 없어요. 그리고 전쟁을 거치고 나서도 유례없는 기적을 만들어냈죠. 한국은 정말 눈부신 발전을 이뤘어요.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잘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표본이자 좋은 기회예요. 잘 이뤄낸 역사를 갖고 앞으로 세계로 나가야 해요. 특히 젊은 사람들은 경계를 넘어서 할 일이 얼마나 많아요. 충분히 자부심을 느끼며, 더 좋은 내일을 꿈꿀 수 있습니다.

본관이 순천 인씨인 대한민국 의사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교실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입니다. 단독 미국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 끼친 공로(한국형 구급차 앰뷸런스 개발, 결핵 퇴치 등)를 인정받아 2012년 ‘특별귀화’ 1호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